국화 유감(國花 有感)?
대구에서 수필로명성을 떨치고 있는 어떤 분의 수필집에서
국화유감이란 제목의 글을 읽었다.
무궁화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향기가 별로 없고 진딧물 등
병충해가 많아 국화(國花)로 지정되기는 불합리하다고 기술하였다.
그래서 무궁화 대신 매화를 국화로 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무궁화에는 병충해가 약간 있고 이북 오도와 같이 추운
고원지대에는 잘 자라지 않는 단점이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시각으로 볼 때 곱게도 보이고 밉게 보이는 수도 있다.
나는 무궁화의 은근한 색과 튀지 않는 꽃잎이 그리 밉지 않게 보인다.
꽃의 수명은 하루 밖에 되지 않지만 100여 일 동안 피고 지고 끈기 있게 피고
생장력이 대단하여 어지간한 땅에 심어도 잘 자라
우리 민족성을 상징한다고 하는 말에 동의한다.
꽃이 피고 남은 씨방도 밉지 않게 기하학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나는 대문 입구나 마당 정면에는 무궁화를 심어 정성들여 가꾼다.
관리하는 밭이나 빈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무궁화를 심어 둔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꽃이 좋은 무궁화를 많이 심고 잘
가꾸어 아름다운 무궁화동산이 되기를 바란다
 홍단심 무궁화
건국 초기 정부는 국화를 정하고자 학계에 자문을 구했는데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추천된 최종 후보는 진달래와 무궁화였는데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결정을 국회에 맡겼다고 한다.
국회에서도 설왕설래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무궁화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진달래는 북쪽 지방에 많이 피는 천한 꽃이라고 했고,
진달래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무궁화는 해충이 들끓어 천한
꽃이라 팽팽하게 맞섰다고 한다.
 백단심 무궁화
이처럼 국회에서도 무궁화와 진달래의 찬반이 엇갈리자,
마침내 대통령의 결정에 따르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당시의 대통령인 이 승만 대통령이 무궁화에 낙점하는 바람에
결국 무궁화가 국화(國花)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북에는 김 일성이 진달래 붉은 꽃 색이 피, 숙청, 혁명,
공산화를 상징하는데 적당하다고 믿었는지
진달래를 국화로 정했다가 지금은 산목련을 국화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배달계 무궁화
또 무궁화의 학명으로 미루어 원산지가 시리아 근방이라고
주장되어 시리아 근방을 조사해 무궁화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은 인도·중국·한국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地理書)라고
전하여 내려오는 문헌으로,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이
그 때까지의 기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봄여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안창호(安昌浩) 선생 등이 맹렬히 민족주의를 고취할 때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라는 말은 우리 한민족의 가슴 속에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뜻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초엽부터 내선일체라며 우리 민족혼을 말살시키는
과정 중에 우리 것을 비하하고 없애는 것 중 하나가 무궁화 였었다고 한다.
무궁화는 진딧물 등 병해충이 많아 농작물에
병을 많이 전염시키고 무궁화 꽃가루가 눈병을 일으키고,
무궁화를 심고 좋아하여 우리 민족에게는
외침과 내란이 많다는 소문을 퍼트렸고 보이는
족족 캐어 버리게 하였다.
우매한 백성들은 교활한 일본인들의 수작에 넘어가
해방 된지 반세기가 넘어도 그런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무궁화를 정원이나 공공건물 정면에 심기를 꺼려하고 있다.

불새 무궁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조생종(早生種)·조중생종(早中生種)·중생종·중만생종(中晩生種)·
만생종으로 나누고, 자라는 습성에 따라
직립고성(直立高性)·직립중성(直立中性)·직립왜성(直立矮性)·
수양고성·수양중성·수양왜성으로도 개량되어 있다.
울타리에나 심어 천하게 키우던 무궁화를 적의한 품종을
잘 골라 좋은 터에 심어 잘 가꾸면 큰키나무 혹은 분재로,
온실에서 사계절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교토지방에는 무궁화를 ‘무쿠게(牟久計)’로 부르며
가정집 정원에 더러 심겨져 있고 절화하여 꽃꽂이 하는데 최상으로 꼽히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우리 것을 너무 비하하고
천시하고 주어진 것을 개량하여 보존하고 자랑하는데 인색하다.
이 땅에 이런 저런 동식물, 풍습, 문화가 있기 까지 반드시 연유도 있을 것이다.
좋지 않는 것은 고쳐야 하지만 우리것은
전부 툇물로 보고 무조건 격하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우리것,
우리 문화를 갈고 닦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한다.
건국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국화, 국기, 애국가를 바꾸자는 개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별로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 통일이 되면 국화, 국기, 국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쓰고 부르고 있는
국화, 국기, 국가가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차적인 문제는 통일이 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를 정원에 심고 꽃 색, 향기,
생장력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여 보았는가?
태극기의 기하학적 상징과 의미와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가?
애국가 가사 4절까지 제대로 부를 줄 아는가?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하여 볼 일이다.
-퍼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