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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잉카의 비밀도시 페루 마추픽추

신데렐라임 2016. 3. 11. 21:23

잃어버린 잉카의 비밀도시 페루 마추픽추

 

아무리 사진으로, TV 화면으로 몇 번을 본 풍경이라 해도 막상 그 앞에 서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곳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자꾸 한숨을 내쉬게 되는 곳.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우루밤바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달려간 정글의 산꼭대기에 남아있는 도시. 날카로운 산들과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여 아래에서는 이 도시의 존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공중도시라는 이름이 붙은 곳.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앞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다. 황금을 찾는 이들에게 쫓기고 쫓겨 도망친 잉카인들이 비밀도시를 건설하고 복수를 꿈꾸었다는 곳. 어느날 갑자기 만 명이 넘던 도시의 주민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185구의 미라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곳. 여성과 아이들을 땅에 묻고 사라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더 깊은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렇다면 아마존 어딘가에는 어째서 그토록 깊은 정글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잉카의 후예들이 남아있을까.

 

1911년에 하이럼 빙엄 (Hiram Bingham)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 덕분에 그토록 오랫동안 남미 대륙을 휩쓴 탐욕스런 발길에도 훼손당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다. 해발고도 2430미터의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계단식 성곽 도시는 잉카 제국에서 유일하게 정복자의 손이 닿지 않은 도시다. 그래서 페루 원주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사랑 받는 곳이기도 하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날,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쿠스코에서 88킬로미터 떨어진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에 자리 잡은 오얀타이탐보는 잉카제국 시대의 숙소나 요새였다고 한다. 잉카 시대의 관개용 수로와 석벽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향하던 길을 따라 가는 ‘잉카의 길’ 트레킹을 하게 되면 이 마을을 거쳐 간다.

 

      잉카의 유적으로 향하는 길 야마들이 먼저 맞아준다

 

하루 5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잉카 트레킹은 인기가 너무 높아 성수기에는 최소 6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나 역시 3박 4일에 걸쳐 잉카의 길을 걸어 마추픽추에 다다르고 싶었지만 예약도 불가능한데다, 한국에서 여름휴가를 맞아 날아온 친구의 일정에 맞춰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마추픽추 행 기차는 세 개의 클래스로 나눠져 있다. 가장 고급 열차는 하이럼 빙엄 열차. 보통 쿠스코에서 당일로 왕복하는 이들을 위한 기차로 티켓에 런치와 칵테일 디너, 영어 가이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 등급은 가벼운 다과가 포함된 비스타돔, 마지막은 저예산 여행자들을 위한 백패커. 우리가 타고 갈 열차 비스타돔에 오르니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파노라마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울창한 녹음과 푸른 하늘이 따라오는 풍경에 취해 열차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역에 내린다.

 

     마추픽추 유적의 주변은 계단식 논과 성벽으로 둘러싸였다

 

기차에서 내리니 호객꾼들이 좁은 기차역을 가득 메운 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을 따라간다. 숙소는 특별한 것도 없지만 깔끔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5시에 버스 정거장으로 향한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는 이유는 마추픽추를 조망할 수 있는 와이나픽추(2690미터)는 하루 500명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5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줄이 길다. 버스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제일 좋은 열차에 하이럼 빙엄의 이름을 붙였더니 이 도로의 이름도 하이럼 빙엄 도로. 조금씩 어둠이 걷혀 간다. 만년설이 녹아 내린 짙은 옥색의 물이 점점 멀어진다. 마침내 공중 도시가 있는 산 꼭대기에 버스가 선다.

 

     마추픽추 주변은 날카로운 봉우리들로 둘러싸였다

 

마추픽추의 입구에는 하이럼 빙엄을 기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기분이 묘해진다. 그가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이렇게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걸까. 그가 이곳을 찾아내기 전에 이미 원주민들은 폐허로 남은 도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 않은가.

 

힘없는 나라여서 빼앗긴 잉카의 유물들

 

예일대의 역사학자였던 빙엄은 잉카 최후의 황제가 우르밤바 강을 따라 빌카밤바로 이동했다는 전설을 토대로 밀림을 탐험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구아스칼레엔테스에 사는 11살 소년에게서 마추픽추 꼭대기에 폐허의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루 일당을 지불하고 소년을 길잡이로 삼아 절벽을 기어 올라 이곳에 다다른 빙엄. 다음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유적 발굴 자금을 받아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세 차례에 걸쳐 그는 토기, 보석, 유골 등 무려 5000여점에 달하는 유물을 노새에 실어 날랐다. 페루 대통령에게 연구 목적으로 단기 반출 허가를 받았지만, 빙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빌려간 유물은 여전히 예일대 피바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페루 정부는 예일대를 상대로 유물 반환을 강력히 요구해 결국 미국은 반환을 합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페루로 돌아온 유물은 없다고 한다. 핑계는 늘 같다. 페루가 귀중한 유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존할 여력이 없다는 것. 힘 없는 나라들은 이런 식의 횡포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

 

     말 없는 돌을 일깨워 사라진 잉카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표를 끊고 바로 와이나픽추로 향한다. 입구에서 장부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이 산을 오르다 떨어져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가파른 고갯길 사이로 좁은 돌계단이 놓여있다. 미끄러운 계단을 40분 남짓 오르니 정상이다. 마추픽추의 유적들이 구름에 가린 산 사이로 아스라이 드러난다. 함께 간 벗이 소리를 지르듯 말한다. “이런 미친 놈들. 이런 곳에 도시를 짓다니.” “이게 15세기 유적일 리가 없어. 20세기 초에 굴삭기로 파서 만든 거 아니야?”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에서 내려와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로 향하기 전에 잉카의 다리를 찾아간다. 까마득한 절벽 사이에 놓인 외길과 나무 다리. 전설의 도시 빌카밤바로 가는 길이었다는 소문이 남아있는 길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만들어진 잉카의 길과 다리

 

유적지 주변을 둘러싼 계단식 밭에 시선이 간다.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질서정연함이라니. 산의 경사면을 깎아 일군 밭에 감자와 옥수수, 코카잎 등을 길렀다고 한다. 15세기 초반에서 중반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추픽추는 도시 대부분이 산의 가파른 경사면에 건설되어 있다. 유적의 주위는 높이 5미터, 너비 1.8미터의 견고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잉카 제국에는 문자와 철기, 화약, 수레바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 엄청난 양의 돌을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옮겨와 도시를 건설했을까. 어떻게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정교하게 돌들을 짜 맞출 수 있었던 걸까. 무게가 수십 톤에 달하는 돌을 옮길 때 추와 지레를 이용했을 거라는 추측 정도만이 가능할 뿐, 아무 것도 알려진 사실이 없다.

 

돌들이 쏟아내는 먼 옛날의 이야기와 아픔

 

빙엄은 이곳이 잉카 최후의 황제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만든 전설의 도시 빌카밤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곳이 어떤 목적으로 세워진 도시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185구의 시체 중 109구가 여성이었기에 수도원이었거나 종교적 성소였다는 주장, 잉카 황제의 여름 별장이었을 거라는 이야기,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라는 설 등등.

 

                                잉카의 빼어난 수로시설

 

가이드 북을 펴가며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무슨 건물인지를 확인하는 건 뒤로 미루고 그저 하염없이 이 돌들 사이를 걷고 싶다. 돌들이 쏟아내는 먼 옛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돌에 서린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와 빅토르 하라 ,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인’으로서의 자각을 일구어낸 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삶의 전환을 맞았다고 했던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중앙광장으로 들어선다. 잉카 문명이 대제국으로 발전한 데는 관개용 수로의 확대와 철저한 물관리가 큰 역할을 했다더니, 이곳에서도 돌을 깎아 만든 수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유일한 곡선 건물인 태양의 신전으로 향한다. 자연석 위에 석축 건물을 세웠다.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던 두 개의 동쪽 창은 텅 빈 채 남아있다. 동짓날 햇살이 이 창을 향해 들어오기 때문에 태양의 신전이라 불린다. 그 옆의 왕녀의 궁전은 이곳의 유일한 복층 건물이다. 왕릉과 곡식 창고, 3개의 창이 있는 신전, 독수리 머리 조각이 남아있는 콘도르 신전을 둘러보고 유적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티우아타나로 향한다. 높이 1.8미터의 해시계는 거석을 깎아 기둥처럼 만들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태양이 이곳에 도달하면 바위 위에 세워진 작은 기둥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해시계나 천체관측소로 추측한다. 그 이름이 ‘태양을 잇는 기둥’을 뜻하는데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이 태양을 붙잡아 묶어두는 의식을 치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정면에 와이나픽추, 눈 아래로는 우루밤바 강과 절벽, 왼쪽에는 계단식 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잉카의 수로와 돌담이 남아있는 오얀타이탐보

 

페루 원주민들의 자부심이자 마음의 고향

 

마추픽추는 유네스코의 세계 복합 문화 유산이다. 잉카의 유적과 더불어 다양한 동식물이 거주하는 주변의 자연환경이 빼어나 복합 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선주민들이 만든 잉카 문명에 대한 서구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페루 원주민들의 자부심이자 마음의 고향이라는 마추픽추. 나를 비롯한 관광객들이 미어터지게 들어찬 지금의 모습에 어쩐지 미안함이 생겨난다.

 

    우루밤바 강이 흘러가는 마추픽추 주변 계곡의 풍경

 

아쉬움과 미안함을 끌어안고 마추픽추를 떠나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달려 내려와 관광객들을 놀라게 했다는 빠른 발의 소년들은 사라지고 없다. 달리기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와 버는 돈 때문에 학교에도 가지 않는 소년들이 생겨 페루 정부에서 금지시켰다고 한다. 잉카 시대의 발 빠른 파발꾼들이었던 차스키. 쿠스코에서 에콰도르 키토까지의 2,000킬로미터를 닷새 만에 달려갔다는 그들. 잉카 제국 구석구석을 잇던 길을 릴레이 형식으로 달렸던 그들의 빠른 발은 잉카 제국의 밑거름이었다. 그들을 통해 신속하게 명령과 물자, 정보가 오갔다고 하니.

 

    와이나픽추에서 바라보는 마추픽추 유적

 

산을 내려오는 길, 나는 네루다의 시를 떠올린다. “나와 함께 태어나기 위해 오르자, 형제여 / 네 고통이 뿌려진 그 깊은 곳에서 내게 손을 다오//..... 나의 핏줄과 나의 입으로 달려오라. 나의 말과 나의 피로 말하라.” 사라진 잉카인들이 쌓은 석벽 위에 태양만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돌은 여전히 말이 없다.

 

      가파른 계단식 논 아래로 우루밤바 강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