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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화백 작품

신데렐라임 2017. 10. 27. 21:05


대한민국의 고흐!! 39살에 요절한 근대화단의 선구자


이인성 (李仁星, 1912년 - 1950년)





<해당화 : Sweet Brier Flowers>
1944,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호암미술관 소장
1944, Oil on canvas, Collection of Ho-Am Art Museum, Yongin






<어촌(덕적도 풍경 : Fishing Village)>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32x41cm, 개인소장
later 1940's, Oil on canvas





<백장미 : White Roses>
1940, 나무판에 유채, 45.3x37.3cm
1940, Oil on wooden board






<풍경 : Landscape>

1930년대 중반, 나무판에 유채, 24x33cm
mid - 1930'0, oil on wooden board





<온일 : Warm Day>

1930년대 중반, 종이에 수채, 72x90cm
mid - 1930'0, Watercolor on Paper









아리랑 고개
1934, 57.5X77.8cm, 종이에 수채, 호암미술관 소장




가을 어느날
1934, 96X161.4cm, 캔버스에 유채, 호암미술관 소장




정물(해당화)
1940년대 후반, 48.5X31.5cm, 종이에 수채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중반, 35.5X45cm, 종이에 수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경주 산곡에서
1935, 130.5X195.6cm, 캔버스에 유채, 호암미술관 소장



   


천재 화가의 행복과 불행   

이인성 (李仁星, 1912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이인성(1912~1950)은 한국 근대미술의 천재 화가로 통한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지만, 권위 있는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제국미술전람회를 비롯, 조선미술전람회의 총독상과 최고상인 창덕궁상 수상, 일본수채화회전의 최고상 수상 등 수차례 공모전에서 입상한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화가들 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화가로 평가 받는 이가 바로 이인성이다. 그는 마라톤의 손기정 선수나 무용수 최승희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신문들은 ‘조선의 지보(보물)’, ‘화단의 중진’으로 그를 소개했으며, 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천재 화가로 알려졌을 정도였다.

그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드라마틱하다. 어린 시절 세계아동예술전람회 입상, 재능을 알아본 일본인 교장의 도움으로 도일,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 입사, 다이헤이요미술학교 입학, 각종 공모전에서 연이은 수상, 결혼, ‘이인성 양화 연구소’ 개설, ‘추천작가’에 발탁, 다방 ‘아르스’ 개업, 개인전, 아내의 죽음, 이화여자중학교 미술교사, 신문 연재소설 삽화 작업,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부 시간강사, 재혼, 경찰이 잘못 쏜 총탄에 맞아 요절하기까지 평탄치 않은 인생역정을 밟아온 것이다. ‘화가’로서의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했지만, 인간 이인성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신수경 작품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