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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조르주 쇠라 작품....

신데렐라임 2017. 10. 29. 22:03


"점묘법"의 창시자

조르주 쇠라 (1859 -1891) 프랑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년 12월 2일1891년 3월 29일)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신인상주의의 시작으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꾸었고, 19세기 회화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1]

 

생애

쇠라는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샹파뉴 출신의 법공무원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파리 출신이었다. 쇠라는 조각가인 쥐스탱 르캥과 함께 처음 예술을 공부하였다. 쇠라는 1878년1879년 에콜 데 보자르에 출석했다. 브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복무한 뒤 1880년 파리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작업실로 옮기기 전까지 파리의 센강 좌안에 그는 두 명의 학생 친구들과 작은 작업실을 공유했다. 그는 그 다음 2년간 흑백화를 그리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그는 1883년 처음으로 그의 주요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이름은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였다. (아스니에르의 센강 참고)

파리 살롱에서 그의 그림이 거절당한 뒤, 쇠라는 이와 같은 주류파에서 벗어나 대신 파리의 독립적인 예술가들에 가담하게 된다.

1884년 그와 다른 예술가들은 (막시밀리안 루스(Maximilian Luce)를 포함하여) 독립 예술가 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여기서 그는 동료 예술가인 폴 시냑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쇠라는 점묘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후에 같은 작풍으로 그림을 그린 시냑과 공유했다. 1884년 여름 쇠라는 그의 걸작인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시작하여 완성하는 데에 2년이 걸렸다.

이후 그는 클리쉬 거리(Boulevard de Clichy)에서 가까이에 있는 작업실로 옮겨, 젊은 모델 마들렌 크노블로흐와 비밀리에 함께 살았다. 1890년 2월 그녀는 아들을 출산했다. 쇠라는 부인과 아들을 그의 부모에게 소개한 지 2일도 되기 전에 그는 사망했다.[출처 필요] 그가 죽은 뒤 마들렌은 그의 2세를 출산했으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쇠라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막염, 폐렴, 전염성 앙기나나 디프테리아 중 하나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2] 그의 마지막 작품인 〈서커스〉는 그의 죽음으로 영원히 미완성이 되었다.

쇠라는 신인상주의의 일파이며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묘화라는 새로운 그림 표현 기법을 창조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