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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이스탄불 (4편)

신데렐라임 2014. 1. 19. 22:43

 

-터키 소개:  공식명칭 :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 

 인구 : 71,617,000   면적 : 783,562
수도 : 앙카라   정체·의회형태 : 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 총리 
공식 언어 : 터키어  독립년월일 : 1923. 10. 29
화폐단위 : 터키리라(Turkish lira/TL)

공식 이름은 터키 공화국(Republic of Turkey/Türkiye Cumhuriyeti). 

 

국토의 일부분만 남동쪽 유럽에 걸쳐있고, 대부분은 서남 아시아에 속해 있는 중동 국가.

수도는 앙카라이며, 북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이란,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그리스·불가리아와 접해 있다.

 

아시아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유럽 지역인 트라케는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 해, 다르다넬스 해협을 경계로 나누어진다.  면적 774,815㎢,

 

 

인구 70,597,000(2003 추계).옛날에 고구려와 투르크는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랜드바자르

그랜드바자르는 이스탄불 대학 앞에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하며         

이후에는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메인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망을 하게 된다.남은 투르크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동해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건설하였고,

고구려는 투르크와 계속우호를 맺으면서 '형제의 나라 라고 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로는 자기네가 형 우리가 아우랜다. 나는 여태 우리가

형 의나라 인줄 당연히 그리알고 있었는데...하긴...인구도 저들이

더많고 역사적 지리적 유산도 많고, 땅도 워낙넓으니 그리 생각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6.26 때도 15,000명을 터키가 파병을 하였는데

20,000명 넘게 모두 지원했다고 한다.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지원병을 자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했다는 사실과 후방 지원이 아닌전투에

참여해서 741명이 전사하였다 하고, 가이드의 이야기에의하면

한국 전쟁의그들의  희생에 대하여 조금도 생색을 내지

 

한다.터키인들의 축구 열광은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극성스러워서

리그 기간중에는 흉기를 소지하고광적으로 응원을 하기때문에

패한팀의 팬들이 울고불고  폭력이 난무 하기때문에 우리교민들은

외출도 자제할 만큼 폭력이난무한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전세계 어디서든 한국사람과 터키사람이 만나게 되면,

서로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면서 서로 무척 반가워 한다고 한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 로 건설하였으며

당시 이름은 비잔티움 이었다.

33년에 콘스탄티노플 로 이름이 바뀌면서 로마제국 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그리스 정교 세계의 중심지이자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 하였고,

동서 문화교류 큰 역할을 하였다..

1930년 터키 공화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서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가득 찬 정원이란 뜻으로 해변을 흙으로 메운 뒤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50만 금화 즉

현재 돈 5억불에 맞먹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 궁은 1856년 완공되었으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총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

3층의 대층 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보스포르스 해협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임

 

 

 

 

 

블루 모스크와 술탄 아흐멧 사원

 

 

성소피아 성당

 

 

소피아 성당에 들어 갈때는 발을 씻고 신발을 볏고 들어 가야함

 

 

 

  성 소피아성당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하고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의 모자이크

장식의 아름다움에입을 다물수가 없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시대 건축 예술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데,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상징물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하고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의 모자이크 장식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수가 없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시대 건축 예술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데,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상징물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미있게도 이 유스티니안 황제는 건축 왕이라고 불렸는데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도 이 황제 때 건축이 되었다.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성당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양식이 섞여 있는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고 있을 때인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은 것을,

532년~537년에 걸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이스탄불 시티투어

 

 

에레바탄사라이 - 지하저수지 - 이스탄불은 많은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충분한 물의 공급이 필요했던 도시였다

비잔틴 제국시대때 지하 저수지를 많이 건축함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저수지가 성 소피아 성당 맞은 편에

위치한 지하 궁전이다 건물의 양 구석의

받침은 메두사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지하 물 저장고 

이 건물은 주후 532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336개의 기둥 중 거의 모두가 비잔틴 코린트식의 기둥을 가지고 있다.

저수지 전체의 크기는 폭 70m, 길이는 140m, 높이가 약8m 정도 된다.

물은 약8만 톤 정도 저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도시민의 식수문제와 궁전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19Km 떨어진 밸그라드 숲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했다고 전한다.

1985년에서 1988년 사이에 이스탄불 시는

이 저수지를 개축하여 새로 단장하였는데

기둥들 사이에는 나무를 재료로 도보를 만들고

조명과 음향효과를 써서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다.

 

 
 
위 기둥 밑에 메두사의 머리가있다

 

 

히포드럼 술탄아흐멧 광장 에있는콘스탄틴 기둥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 에게 좀더 가까이 가고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것이 라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태양신에게 받치려고 만든 비문인데

원래는 이집트에서 있었으나 로마 데오도시우스가

 전리품으로 지금의 터키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넓은 광장에 비잔틴 제국의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 룩소에서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 첨탑이 있다.

 

 

그랜드바자르

그랜드바자르는 이스탄불 대학 앞에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하며         

이후에는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메인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장소를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메인 아케이드의 바깥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서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터키의 민족적 향기가 감도는 이스탄불 최대의 쇼핑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물건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장소를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메인 아케이드의 바깥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서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터키의 민족적 향기가 감도는 이스탄불 최대의 쇼핑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물건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랜드바자르를 터키어로는 "카팔르 차르쉬"라고 하는데,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 그대로 실내에 있는 상점가이다.

4,000여 개 이상의 상점과 67개의 골목길,

출입구만도 20여 개인 시장은 전문 품목별로 나뉘어져 있다.

영화 007 스카이폴의 이스탄불 장면에서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그랜드바자르 지붕위를 오토바이로 추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007 정도의 영화가 아니면 아니면 촬영허가를 받을 꿈도 못꾼다고 한다.  

 

발렌스 수도교

 

보스포러스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본 주위 경관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분기점

인 보스포러스의해협의 해안선을 따라 작은 숲들 카페, 찻집, 술

집,들 그리고 식당, 별장, 등, 크루즈를 타고 본 경관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각국의 정상들이묵었든 곳이라고함

 

 

호화 크루즈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공원묘지 

 

 

-피에르로티 언덕 과 골든혼의 석양-

피에로티 언덕에서 골든혼의 노을을 보지않고는 이스탄불을 논하지말라!

고  누가 말했더라만.... 그네들만의 이야기인가? ㅎㅎㅎ

 

 

 

 

 

 

여행이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모습에서  

거울에 내모습을 비추어보듯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 하기도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우게 되는것 같다.

 

 

         - 이 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