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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가로등이 있는 숲길」

신데렐라임 2019. 2. 24. 22:23

  



양애경,「가로등이 있는 숲길」





가로등이 있는 숲길
양 애 경(낭송: 윤미애)

초여름 저녁 어스름
산책로로 접어드는데

파득, 하고
가로등이 날개 펴는 소리가 들렸어요

올려다보니
빛의 씨앗이 점점 더 붉게
더 환하게 켜지더니

밤의 우주를 향해 열린
커다란 등대가 되더군요

내 마음도
가로등처럼 켜져서

우주를 향해
그대, 나 외로워!라고

나와 밤하늘만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빛의 빠르기로 대답이 와도
몇천 년 후에야
이 자리에 도착할지 몰라요

산새가 가쁜 내 숨소리를 따라와서
자기도 답.답.해. 답.답.하다고

나무 위에서
큰 소리로 울어줬어요

하늘엔 초승달과 별이 마주보며
저렇게 수줍게 열려 있는데

밤이 다가온 숲과
사람이 사는 마을 사이

저렇게 아름다운 불빛들이 걸렸는데

양애경 시집
『내가 암늑대라면』(고요아침)

저녁 어스름 혼자 걷는 산책길.
가로등이 날개 펴는 소리를 하며 불을 밝힙니다.

우주를 향해 등대불처럼
환하게 퍼져나가는 불빛처럼

내 마음도
그대를 향해 그렇게 켜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외로워 소리쳐도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그대의 목소리.

사람의 마을에는
아름다운 불빛들이 걸렸는데,

산새만 대신 울어줄 뿐
그대는 없는 길.

그런 외로운 산책길을
오늘도 혼자 걷는 이 있지요.

문학집배원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