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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섬진강 17 – 동구」

신데렐라임 2018. 4. 8. 21:22





김용택,「섬진강 17 – 동구」



「섬진강 17 – 동구」
김 용 택(낭송: 김상현)

추석에 내려왔다
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

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
―차비나 혀라

―있어요 어머니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몇 푼 쥐여주는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텅 빈 들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우야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

어머니 모습 스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머니
어머니 부를 아우야

찬 서리 내린 겨울 아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돌리며 앉아 불을 쬐니

팔리지 않고 서 있던
앞산 붉은 감들이

눈에 선하다고
불길 속에 선하다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고

강 건너 콩동이랑
들판 나락 가마니랑
누가 다 져날랐는지요

아버님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김용택 시집 『섬진강』, 창비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일하며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두고 온 어머니 아버지와
쓸쓸한 고향이 있습니다.

사는 게 여의치 않아서
자주 가지는 못하고

추석이면
내려갔다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입 속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돌아오는 때가 있습니다.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편지를 쓰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차비나 혀라“,
“있어요 어머니“

그러면서 잡았던
소나무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이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