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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어머니와의 사연

신데렐라임 2018. 7. 8. 21:50



나와
우리 어머니와의 사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차에 당한 사고라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했고,

4살 많은 누나와 나만
세상에 남겨졌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큰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다.



적은 액수였지만,
부모님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이 있었는데,
누나 이름으로 된 통장을

큰아버지가
관리한다고 가져 가셨다.



우리는
의지할 곳이 없었고,

너무 어렸기에
통장을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신적 충격이 컸던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 했다.

뭐라고 말도 하고 싶은데,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라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큰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문제라면서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으셨다.



성격이 까칠했던
큰 어머니는

집안에 머리카락 하나
뒹구는 것도

용납을 안 하는 분이라서

나와 누나가 들어온 후로
부쩍 신경이 날카로워지셨다.



큰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한 명 있었는데,

나 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을 간 상태라

방이 비어 있었는데도
그 방을 어지럽히면 안 된다고 했다.



나와 누나는
다용도실로 쓰는 방을 사용했다.

간혹
친척들이 다니러 오거나

손님이 오실 때만
그 방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지냈고,
손님들이 돌아가시면

바로
다용도실로 가야 했다.



누나는
큰집에 들어가면서 부터

식모살이를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 쓸고, 집안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매일 손빨래까지 했다.

어린 나이에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누나는 코피를 자주 쏟았고,

누나가 코피를 쏟으면
큰어머니는 더럽다고 난리를 치셨다.



성적이 좋았던 누나는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시험 기간이라
학교에서 공부한다" 고 하면,

큰어머니는
"집안 일은 누가 하냐?"

며 노발대발 하셨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밥값은 해야지

니가 안 하면,
니 동생을 시키겠다"

고 엄포를 놓았기에
누나는 나 대신

그 많은 일을 다 해냈다.



아직 말도 못하는 동생에게
힘든 일을 시키다가

혹시
영원히 말을 못 하게 될까봐

누나는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큰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 졌다.

누나와 나를 향한 못마땅한 시선은
더욱 심해졌고,

말끝마다

"고아원에 안 보내고,
데리고 살아주는 걸 감사하라"

고 했다.



큰 아버지는
점점 술 마시는 날이 늘어갔고,

유학 간 아이에게
돈을 부쳐줘야 하는데,

왜 돈을 안 주느냐고
싸우는 일이 잦더니,

큰어머니의 잔소리가
그치지 않자

술을 마시고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해 겨울 날,

누나와 나는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방에서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큰아버지가 들어와
허리에 매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도 맞으니까
누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왜 자꾸 때리느냐?" 며
"이럴 거면 고아원으로 보내주라,

차라리 고아원에 가겠다"

고 소리를 질렀다.
큰아버지는

"키워주는 은혜도 모르고 대든다"
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누나를
무섭게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때렸던지
누나가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누나 때리지 말라"

고 소리쳤다.

그 때까지 속에서만
맴돌던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고,

큰 아버지는 내가
갑자기 말을 하는 것에 놀랐는지

때리는 것을 멈추고
방을 나갔다.



누나는 내가 말을 하자
너무 기뻐하면서

"집을 나가자" 고 했다.
그동안 말도 못 했는데,

그런 상태로 고아원에 가면
혹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 할까봐

누나는
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니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아원에 가서 살자!

어디를 가든
여기 보다 나쁘기야 하겠냐?" 며.

그 날 밤에 누나와 나는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고아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 지도 몰랐다.

경찰서에 찾아가
고아원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경찰서에서

큰아버지한테
연락을 할까봐 걱정됐다.

다시 큰 집으로 가게 될까봐
우리들은 밤길을 오래 헤매야 했다.



누나는 오랜 고민을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누나 담임선생님이었던 분께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
누나한테 힘내라고

매일 전화해 주고
챙겨주던 고마운 선생님이셨다.



누나가 전화를 하자
선생님은 멀리 지방에서

밤새 달려 왔고,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 주셨다.

누나와 내 얼굴을 보더니,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꼭 안고
목 놓아 우셨다.



그리고,
우리를 선생님이 사는 집으로

데려 가셨다.

누나는 선생님께

"고아원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으니 도와달라"
고 부탁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고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큰 집으로 가셔서
우리들의 짐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함께 살자" 고 하셨다.

"아들 딸 다 결혼해서
그 동안 혼자 살기 적적했는데

, 너희가 함께 살아 주면
외롭지 않아 좋을 것 같다"

고 하셨다.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 남매에게 엄마가 되어주셨다.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는 누나와 달리

나는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쭉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도
편하게 부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누나와 내가
부모 없는 아이들 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모든 면에서 소홀하지 않게

신경을 쓰셨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우리들을 꼭 챙기셨고,

그 집의 누나와 형들도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해 주셨다

.

그 후,
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황을 했고,

선생님 집을 나와
중국집 배달원으로

취직했을 때에도
선생님은 수소문을 해서

나를 찾아 냈다.



그리고,
"니가 이렇게 살면,

내가 나중에 너희 친부모님을
어떻게 보겠느냐?"

며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일 중국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선생님이 고마웠지만,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혼자 자립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매일 나를 기다리던 선생님께서

학교가 끝나고
저를 보러 오시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셨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내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다.

우리 부모님도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나 때문에
선생님마저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 갈 자신이 없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
'선생님이 살아만 계시면

앞으로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들이 되겠다'

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병원에 가서 보니,
선생님은 수술실에 계셨고,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셨다.



그러나,
큰 수술이어서

3달 동안 입원을 하셔야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나는
선생님의 간병을 해 드렸다

그러면서

그동안 속 썩인 것을
용서받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고맙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선생님을
화장실에 모셔다 드렸는데,

화장실을 나오면서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아들한테 미안한 것이
왜 이렇게 많으세요?"

내가 처음으로 뱉은
'엄마'라는 단어에

선생님이
"고맙다" 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선생님의 진정한 아들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이젠,

엄마가 퇴직을 하셔서
텃밭을 가꾸고,

주말에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신다.

엄마가 안 계셨으면,

나와 누나가 이만큼 바르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누나는 공무원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우리들은 엄마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내게 해 주신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든든한 선생님으로 기억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냐면,
그것이 선생님이 나의 엄마가 되어

내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혼자 산다는 것은
너무도 쓸쓸한 일이다

가슴 속까지
뻔히 들여다 보고

물살처럼 빠져나가는 외로움을
작은 가슴하나로 받아 내는 일은

때론
눈물에 겨운 일이다.



하염없이 흐드러지며
눈 앞을 내 뒹구는

햇살 몇 줄기에도
그림자 길게 늘어 뜨리고

무심코 불어 오는
찬 바람에도

몸서리 치게
추운 것이기에

어쩌면
세상을 혼자 산다는 것은

무모한
오만인지도 모른다



그리워 할 수 있을 때
그리워 해야 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 해야 한다.

다하지 못한 말
언저리 깊게 배어 내어

주절주절 뱉어도 내어야 한다.

가슴 시리도록
허전해 오면

목 놓아
이름도 불러 보고

못 견디게 보고픈 사람은
찾아도 보아야 한다.



가끔은
무작정 달려가

부둥켜 안아도 보고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느껴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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